14m 부처님 괘불도, 28년만에 마침내 국보로

이번에 국보로 지정된 무량사 괘불도는 길이 약 14미터의 삼베 바탕 위에 화려하게 장식된 부처의 형상이 정교하고 균형감 있게 묘사된 작품이다. 특히 보관을 쓴 미륵불이 정면을 향해 선 모습은 단순한 신앙의 표현을 넘어선 조형미를 갖추고 있다. 부처의 입술과 속눈썹, 콧수염에 이르기까지 세부적인 부분까지 정밀하게 표현돼 예술적 완성도도 높다. 국가유산청은 이 괘불도를 “장엄신(莊嚴身) 괘불의 시작점을 연 작품”으로 평가하며, 한국 불화사에서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무량사 괘불도의 역사적 배경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그림의 하단에는 제작 당시의 화기(畵記)가 남아 있는데, 이를 통해 1627년에 법경, 혜윤, 인학, 희상 등 여러 스님들이 함께 그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일제강점기 당시 촬영된 유리건판 자료에도 이 괘불도가 등장해 오랜 세월 동안 그 문화적 가치와 존재가 확인되어 왔다. 국보로 지정된 괘불도는 1997년 이후 약 28년 만의 사례로, 이번 무량사 괘불도의 국보 지정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도 하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지정의 의의를 “무량사 괘불도가 현재까지 전해지는 괘불도 중 제작 시기가 가장 앞선 편에 속하며, 충청 지역을 중심으로 퍼졌던 미륵대불 신앙이 뚜렷이 반영돼 있어 연구 가치가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괘불도는 괘불이라는 장르가 확산되고 발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작품으로, 규모, 장엄성, 시대성, 상징성, 예술성 모두를 갖춘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날 국가유산청은 괘불도 외에도 고려와 조선 시대의 귀중한 전적 3건을 보물로 함께 지정했다. 먼저 ‘대방광불화엄경소 권118’은 당나라 승려 징관이 지은 불경에 대해 송나라의 정원이 해설을 덧붙인 것으로, 고려시대에 대각국사 의천이 송나라에서 가져온 후 국내에서 경판으로 제작된 중요한 불서다. 1087년 무렵 2천900여 장의 경판이 고려에 전해졌으며, 이후 국내에서 인쇄본으로 유통되었다. 이 경판은 일본이 여러 차례 요청해 15세기 초반 일본에 일부가 하사되기도 했다. 현재 해당 권118은 동일한 판본 중 국내에 유일하게 전해지는 소중한 자료로 보물로 지정됐다.
또한, 조선 개국의 이념적 기반을 세운 삼봉 정도전(1342∼1398)의 저작물인 ‘삼봉선생집 권7’도 보물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그의 정치 철학과 문학이 담긴 이 문집은 조선 초 정치사와 사상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고려 중기의 대표적인 문인 이규보(1168∼1241)의 글을 모은 ‘동국이상국전집’ 중 권18∼22, 31∼41도 보물로 지정됐다. 이규보는 고려 무신정권 시기 활약한 문신으로, 그의 저작은 당시 지식인 사회의 사상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주요 자료다.
이번 국보 및 보물 지정은 단지 유물의 보존 차원을 넘어, 한국 문화유산의 정체성과 역사적 맥락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괘불도가 지닌 종교적, 예술적 의미뿐 아니라, 고려·조선 시대 전적들이 품고 있는 사상과 기록의 가치까지 아우르는 이번 결정은 한국 유산 보존과 연구에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운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