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도둑' 중국이 화내자 게시물 삭제한 펜디... 명품 브랜드도 '굴욕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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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의 영문판 글로벌타임스는 지난 27일 "펜디가 최근 중국 문화적 뿌리를 한국 것으로 잘못 설명했다는 비난을 받아 분쟁에 휘말렸다"며 "펜디 측은 관련 항의를 잇따라 받아 조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펜디는 중국 소비자들의 항의가 쇄도하자 관련 게시물을 삭제하는 등 즉각적인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된 제품은 펜디가 서울시무형문화재 제13호 김은영 명예매듭장과 함께 협업한 '바게트 백'으로, 지난해 11월 '핸드 인 핸드(Hand in Hand)' 캠페인의 일환으로 공개됐다. 이 캠페인은 펜디의 대표 가방인 '바게트 백'을 한국, 이탈리아, 호주, 스코틀랜드 등 전 세계 각국의 전통 장인들과 협업해 특별 에디션으로 제작하는 프로젝트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캠페인에 중국 자수 장인과 협업한 제품도 별도로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펜디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김은영 매듭장과의 협업 제품을 소개하며 "한국에서는 1965년부터 단일 긴 끈을 묶고 고정하여 장식 매듭 형태로 여러 모양을 만드는 전통 공예인 매듭을 전문으로 하는 김은영 장인과 협업했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이 중국 소셜미디어(SNS)에 공유되면서 중국 네티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의 장인 정신은 곧 한국 문화 유산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며 "이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중국의 전통 장식 수공예품인 중국 매듭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 매듭은 당나라와 송나라의 민속 예술로 시작해 명나라와 청나라에서 인기를 얻은 장식용 수공예품"이라며 "복잡한 패턴이 한 조각의 실로 짜여져 독특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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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디의 게시물이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 공유된 후, 수많은 중국 네티즌들은 "펜디가 중국 문화를 도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격렬하게 항의했다. 이 논란은 순식간에 확산되어 웨이보에서 관련 주제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다. 한 중국 네티즌은 "펜디의 협업 백 디자인은 미적으로 만족스럽지만, 중국 매듭 기술을 한국의 장인 정신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명품 브랜드는 중국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러한 항의가 이어지자 펜디는 공식 홈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서 김은영 매듭장과 협업한 관련 게시물을 내리는 조치를 취했다. 이는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고려한 신속한 대응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1942년생인 김은영 매듭장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실내장식을 전공한 후, 우연히 매듭장에 관한 기사를 접하고 매듭의 길로 입문했다. 그녀는 1996년 서울시무형문화재(무형유산) 제13호 명예매듭장으로 지정되었으며, 로마, 파리, 교토 등 세계 여러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며 60년 가까이 한국 전통 매듭 예술을 이어오고 있는 중견 장인이다.
이번 펜디와의 협업에서 김은영 매듭장은 경상남도 고성 문수암에 구름이 드리울 때 바라본 석양에서 영감을 받아 '핸드 인 핸드' 바게트백을 제작했다고 한다. 아름답게 물든 석양의 색을 통해 여운을 담아냈고, 전통적으로 조선왕조 왕과 왕비의 의상을 장식하는 데 사용한 매듭 기법을 활용했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이번 논란은 단순히 한 명품 브랜드의 마케팅 실수를 넘어, 동아시아 전통 문화의 기원과 소유권을 둘러싼 한중 간 문화 갈등의 단면을 보여준다. 특히 중국이 최근 몇 년간 김치, 한복 등 한국의 전통 문화를 자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문화 공정' 논란을 일으켜온 상황에서, 이번에도 중국이 한국의 전통 매듭 문화가 자국 문화라고 주장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문화 전문가들은 동아시아 국가들 간의 문화적 교류와 영향 관계는 수천 년에 걸쳐 복잡하게 얽혀 있어 어느 한 국가의 '전유물'로 단정 짓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한 문화인류학자는 "매듭 공예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각기 독특한 발전 과정을 거쳤다"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지만 각국의 고유한 특성과 미학이 반영되어 있다"고 설명했다.